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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선생의 풍모을 닮은 북촌유거

  • 손민두
  • 2011-05-05 오전 11:18:39
  • 1,493
一婉侯吻潤 (일완후문윤)
兩婉破孤憫 (양완파고민)
三婉搜枯腸 (삼완수고장)
唯有文字五千券 (유유문자오천권)
四婉發輕汗 (사완발경한)
平生不平事 (평생불평사)
盡向毛孔散 (진향모공산)
五婉肌骨淸 (오완기골청)
六婉通仙靈 (육완통선령)
七婉喫不得也 (칠완끽불득야)

첫 잔은 입술과 목을 젹셔주고
둘째 잔은 고민을 없애주며
셋째 잔은 무너진 붓끝이 풀려 생각나는 글이 오천권이나 되고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불평 모공으로 빠진다네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하고
여섯째 잔은 신선과 통했다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양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솔솔이네

이 한시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옥천자(玉川子)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婉茶歌)의 일부로 차를 마시면서 느끼는 심신의 변화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신선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시 입니다.

석호선생께서 살던 시대는 신질서와 구질서가 맞서는 과도기로써
세상은 몹시 시끄럽고 또 어지러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대의 지식인이요, 선비였던 선생께서는 세상걱정에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을 찾아오는 벗들과 북촌유거 누마루에서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우뚝 솟은 부용대의 모습에 취해
시 한 수 짓는 풍류는 있을 수 있는 분이겠다 싶어
외람되게 시 한 편 올려봤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진즉 소식을 전한다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소식 전하게 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날 함께 갔던 저의 지인들은 지금도 북촌댁과 류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합니다.
하긴 명문가 북촌댁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그 북촌댁을 종손의 안내에 따라 남들이 볼 수 없는 곳까지
속속들이 둘러봤으니 얼마나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겠습니까?
명품을 명해설자와 동행하며 감상했다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늦었지만 함께 간 분들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지난 북촌댁 방문을 통해
역시 집이란 주인의 풍모를 닮는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 집에 가보란 말이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이 그곳같은 획일화된 구조의 아파트에 사는 지금도
회자되는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북촌유거는 건조중인 재목을 구명보트 대용으로 강물에 죄다 버리고
새로 나무를 구해 지은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담겨있는 집이지만
저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양반 사대부가이지만 호화롭지 않고
건물의 기능적 측면을 최대한 활용한
실용적 공간운영을 꽤했다는 점에서
선생의 검소하면서도 호방하고 실용적인 풍모가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양반사대부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인 누마루의 난간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앞마당에 풀과 나무를 심지 않고
다용도의 빈 공간으로 남겨두면서
빈 마당이 자연대류에 의한 공기조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점,
또 지나가는 행인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자연친화적이고 실용적이며 검소한 몸가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으뜸으로 삼았던, 북촌댁 만의 전통이 베어있는,
여느 사대부가에선 보기 힘든 공간 운영이었습니다.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마치 석호선생을 직접 뵙고 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와는 시간과 공간으로 차이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분이지만
당신이 살던 집을 통해 당신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종택을 잘 보존함으로써 저에게도 석호선생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류선생 님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달, 보금자리 5월호에 "하회마을 북촌댁"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한 편 썼습니다.
졸필이지만 북촌댁 주소로 우송해 드릴까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며 종택의 보존에 계속 힘써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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