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 이야기
오랜 민속 전통과 옛 집들을 잘 보존한 풍산 류씨(柳氏) 씨족마을인 하회는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하회마을의 땅 모양은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휘감아 돌면서‘S’자 모양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화천 건너 남쪽에는 남산(南山)이 있고, 마을 뒤편에는 화산(花山)이 마을 중심부까지 완만하게 뻗어 자연의 기운을 마을에 뿌리고 있습니다. 강 북쪽으로는 부용대(芙蓉臺)가 병풍과 같이 둘러져, 산천 지형 또한 천혜의 아름다운 곳임을 잘 보여줍니다.

류성룡(柳成龍) 등 많은 고관들과 선비 학자를 배출한 마을로, 임진왜란의 피해도 없어서 오랜 전통이 유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허씨(許氏) 터전에, 안씨(安氏) 문전에, 류씨(柳氏) 배판이라는 말대로 최초의 마을 형성은 허씨들이 이룩하였고,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었다고 합니다. 안씨들은 지금 하회로 들어오는 입구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전해지며, 마지막으로 류씨들이 들어오면서 하회는 이름난 동성마을을 이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양진당(보물 306), 충효당(보물 414), 북촌댁(중요민속자료 84), 원지정사(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85), 빈연정사(賓淵精舍:중요민속자료 86), 류시주가옥(柳時柱家屋:중요민속자료 87), 옥연정사(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88), 겸암정사(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89), 남촌댁(중요민속자료 90), 주일재(主一齋:중요민속자료 91), 하동고택(河東古宅:중요민속자료 177) 등입니다.

양진당·충효당·북촌댁 등 큰 가옥들은 사랑채나 별당채를 측면으로 연결하거나 뒤뜰에 따로 배치하는 등 장대한 몸채·사랑채·많은 곳간·행랑채가 공통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사랑방·서실·대청·별당과 같은 문화적 공간을 지니는 점은, 당시 선비들의 생활상을 짐작하는데 중요한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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